아픔 속에서 신의 길을 택한 사람, 약수동 최보살 이야기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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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3 14:40
아픔 속에서 신의 길을 택한 사람, 약수동 최보살 이야기
따뜻함 뒤에 숨겨진 단호한 책임감
약수동 최보살님은 처음 법당을 찾는 이들에게 마치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편안한 인상을 줍니다.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 차 한잔을 내어주는 정성스러운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에서 그런 이미지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녀가 부채와 방울을 드는 순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미래를 말하는 이 일에 있어 최보살님은 누구보다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남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더 신중하고, 신령님의 뜻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편안함 속에도 진중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많은 신도들에게 신뢰를 주는 요소입니다.어머니의 신기와 자신의 선택받음
무속의 기운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최보살님의 어머니는 신의 기운을 받아 무속인의 길을 가려 했지만, 끝내 신내림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굿을 하다가 쓰러지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최보살님은 “신이 어머니의 몸에 자리를 잡지 못한 것 같다”고 회상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기운은 딸인 자신에게로 옮겨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신제자의 길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병으로 인한 고통도 참으며, “그럴 돈 있으면 차라리 먹고살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은 그녀를 더 깊은 길로 이끌었습니다.17살 아들의 죽음, 그리고 신의 뜻을 받아들이다
최보살님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일이었습니다. 17살 된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으로 물놀이를 떠났습니다. 그날 새벽, 최보살님은 몹시 뒤숭숭한 꿈을 꾸고 불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소식은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아들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시신조차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최보살님으로 하여금 더 이상 신의 부름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어머니, 남편, 자신 모두에게 나타났던 신병이 서서히 사라졌고, 삶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신령의 뜻을 전하며 살아가는 무속인의 삶
신제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 최보살님은 오히려 “왜 진작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경제적으로도 한층 나아졌고, 법당이 외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용하다는 소문은 입소문을 타고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그녀는 점사 또한 철저히 신령님의 뜻에 따라 전합니다. “신령님이 말씀하시는 그대로 전해요. 저는 거짓을 보태지 않아요.” 처음에는 용기가 없었지만, 신도들의 만족스러운 반응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경험이 쌓이면서 그녀는 더욱 신념을 가지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기도 또한 중요한 일과 중 하나입니다. 산기도는 물론이고, 서해 바닷가로 가서 용궁기도도 자주 갑니다. “신령님이 원하시면, 한 달에 몇 번이고 달려갑니다.” 그녀는 기도상도 소박하게 차립니다. “신령님이 많이 차렸다고 더 좋아하시는 건 아니에요. 정성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쌀, 술, 옥수, 과일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은 그녀의 겸손한 신앙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약수동 최보살님의 삶은 무속인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 그리고 신의 뜻을 겸손히 전하려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큰 아픔을 겪고 신의 길을 택한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